아무나 칠 수 없었던 신문고
금천교를 지나면 진선문이 있다. 1402년(태종 2) 이 문에 신문고를 설치하였으나 중간에 유명무실해졌다가 1771년(영조 47)에 다시 설치하였다. <경국대전>에는 '원통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자는 소장을 내되, 그래도 억울하다면 신문고를 두드려라'라고 신문고 치는 절차를 밝혀 놓았다. 일반 백성들이 이러한 절차를 다 밟기도 어려웠거니와,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돈화문을 통화하여 신문고를 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두드리기 힘든 신문고는 포기하고 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백성들이 많아져 조정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