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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번호 : 7 등록일 : 2015-07-06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인정한 우리의 문화유산 수원화성 !!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긴 것은 큰 뜻을 펴기 위해서였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면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충성스러운 신하, 군사력, 그리고 이들을 원만하게 다룰 수 있는 자금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했다. 정조는 수도인 서울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얻기 어려우며, 신도시를 건설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 목적의 정치 공간을 아버지의 추모 사업과 연결하여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수원부는 딱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서울과 남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 활동을 위한 도시인 한편, 사도세자의 현륭원이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자신의 야망을 구현시킬 대역사를 당시 30세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게 맡겼다. 처음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공사는 놀라운 속도로 진행됐다. 1796년 10월, 단 34개월(중간의 6개월 정역()을 생각하면 28개월)만에 낙성연을 치렀는데 수원 화성과 같이 방대한 공사를 2년 반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실학자인 정약용과 같은 젊은 피를 수혈하여 종전과 차원이 다른 계획에 따라 건설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념의 성, 수원 화성

정약용은 수원 화성이 다른 성곽과 차별화되도록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평산성() 형태를 기본으로 했다. 한국의 성곽은 전통적으로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과 전시에 피난처로 삼는 산성을 기능상 분리했는데, 수원 화성 성곽은 피난처로서의 산성을 따로 두지 않고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의 방어력을 강화시켰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방어시설을 갖추고 망루는 물론 총안(), 즉 총구멍도 설치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성곽의 용도가 다양했다.

 

특히 석성()과 토성()의 장점만 살려서 축성하였으며 제반 시설물은 지형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효율적 방어가 가능하도록 배치했다. 팔달산 정상에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두었으며 맞은편 높은 곳에 외부와의 통신시설인 봉수대를 벽돌로 만들어 세웠다. 화성 남북 단에는 장안문팔달문, 동서 단에는 창룡문화서문을 세우고 남서와 동북 방향 높은 지대에 각기 화양루와 동북각루를 세워 비상시 군사 요충이 되도록 했다.

 

화성의 또 다른 특징은 도시 기반 시설이다. 화성에는 팔달산 기슭의 행궁과 화성 유수부 앞에서 정면으로 용인 방면으로 이어지는 십자로 등 인근 지역과 연결되는 새로운 개념의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이 십자로 주변에 상가와 시장을 배치하여 상업도시로서 화성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정조는 화성을 물류경제와 국제무역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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